연상의 와이프

8살, 2살, 2살, 5살... 결혼을 포함해, 내가 지금껏 만나왔던 연상 여성들과의 나이 차이다.

문득 이 숫자들을 나열해 보고 나니,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연상의 여성이 나의 무의식적인 이끌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끌림의 근원을 따라가다 보니, 내 어린 시절, 상대적으로 부족하게만 느껴졌던 어머니의 사랑, 그로 인한 '결핍'은 아니었을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God의 어머님께 나오는 가사처럼 어렸을 때부터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 하는 외식은 커녕 부모님 두 분이 가게로 매우 바쁘셨다.

내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학부형 회의는 물론, 학원을 등록하러 갈때 조차도 나 혼자 상담을 받았던 경우가 부지기수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같은 반 친구가 멋드러진 스카프를 메고 있던 엄마에게 달려가던 그 모습이 생생한 것을 보면, 엄마의 사랑이 참 고팠던 아이였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8살, 2살, 2살, 5살이라는 숫자들이 단순한 나이 차이가 아니라, 내가 무의식적으로 찾아 헤매던 어떤 '결핍의 크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g.o.d의 노래 가사처럼, 우리 집의 가난은 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삶이 너무 팍팍하고 바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외식 한번 편히 못하고 가게에 메여 계셨던 부모님의 고단함을 이제는 이해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이해'가 아닌 '경험'으로 세상을 배웠다. 내가 경험한 것은 학부형 회의의 빈자리였고, 혼자 등록하던 학원의 낯선 상담실 공기였다. 부모님의 사랑을 의심한 적은 없지만, 그 사랑이 '표현'되고 '증명'되는 순간을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그토록 선명하게 남아있는, 멋들어진 스카프를 멘 친구 어머니의 모습. 어쩌면 나는 그 스카프에서 내가 받지 못했던 '세련된 돌봄'과 '나를 향한 여유 있는 관심'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 친구를 향해 달려가던 엄마의 모습은, 내게는 가장 부러웠던 따뜻함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결국 성인이 되어 내가 만났던 연상의 여성들은, 알게 모르게 그 시절 내가 그토록 바라던 '엄마'의 다른 모습은 아니었을까. 나보다 성숙하고, 나를 더 이해해주며, 때로는 나를 기댈 수 있게 해주는 그 포근함 속에서... 나는 어쩌면 아직도 그 4학년 교실 한구석에서, 멋진 스카프를 두른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내면의 깊은 결핍은, 내가 평생의 동반자를 선택하는 기준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연상의 여성들에게 기대며 나의 '과거'를 위로받고 치유하려 했다면, '결혼'이라는 현실을 앞두고서는 나의 '미래', 그리고 내가 만들 '가정'을 위한 가장 절박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만큼은, 내가 겪었던 그 '학부형 회의의 빈자리'와 '혼자 등록하던 학원의 낯선 공기'를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바빠서', '먹고살기 힘들어서'라는 어른의 사정이, 아이의 기억 속에 '사랑받지 못함'의 상처로 남게 되는 그 아픔의 대물림을 끊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잘 키워낼 것 같은 여자'를 찾았다.

그것은 단순히 모성애가 강한 여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무의식이 정의하는 '아이를 잘 키워내는 사람'이란, 어쩌면 '내가 그토록 받지 못했던 것을 온전히 줄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이의 눈을 맞추고 그 작은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사람. 삶이 고단한 순간에도 아이의 손을 놓지 않을 단단함을 가진 사람. 내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세련된 돌봄'과 '나를 향한 여유 있는 관심'을, 내 아이에게는 아낌없이 베풀어 줄 수 있는 사람.

결국 나의 결혼 상대자 선택 기준은, 내 안의 그 4학년 꼬마 아이가 자신의 미래 자녀에게 보내는 가장 간절한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괜찮으니, 너에게만큼은 부디... 내가 기다렸던 그 따뜻한 엄마가 되어주기를.'

나의 결핍을 채우는 것을 넘어, 내 아이의 삶은 처음부터 온전한 '충만함' 속에서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내가 아내를 선택한 가장 진실된 이유였을 것이다.

그녀는 내 안의 그 4학년 꼬마 아이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멋진 스카프를 두른 엄마'의 모습을,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매일같이 보여주고 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조곤조곤 대화하고, 서툰 그림 하나에도 진심으로 감탄하며, 아이의 손을 잡고 당당하게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내.

그 작은 일상에 온전히 귀 기울여주는 아내를 볼 때마다, 나는 비로소 그 길었던 '학부형 회의의 빈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기분이다. 나의 과거를 치유하기 위해 아내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우리 아이들에게 '충만한 현재'를 선물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나의 '결핍된 과거'까지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고 있다. 그렇게 우리 가정을 온전한 사랑으로 채워주는 아내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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